소멸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마지막 소설『소멸』. 198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베른하르트의 3대 대표작 중 하나이다. 베른하르트는 조국과 가족은 물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긴 호흡의 문장과 문단 구분이 없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30년 전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떠나 로마에서 독일 문학을 가르치며 사는 프라츠 요셉 무라우는 여동생의 결혼식을 보고 돌아온 지 이틀 만에 부모와 형의 부음을 듣는다. 부모가 반대하는 삶을 살아온 그는 가족의 경멸과 증오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는 고향으로 가서 장례식을 치르는 사흘 동안의 일을 통해 가족과 조국에 대한 정직한 시선을 풀어놓는데…. 베른하르트는 냉소적인 목소리로 세상의 모순과 편견을 꼬집는다. 우리가 으레 받아들이는 관계는 물론,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사물에 대해서도 냉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주인공 프라츠 요셉 무라우가 제자에게 행하는 문학 수업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49명의 작가와 22개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단순히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작가와 작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