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정보
- 제목
- 유랑시인
- 저자
- 타라스 셰브첸코 [지음];한정숙 [옮김]
- 출판사
- 한길
- ISBN
- 8935656534
- 청구기호
- 892.89 셰47ㅇ
유랑시인
타라스 셰브첸코 [지음];한정숙 [옮김]
시인, 그는 얼마나 약하고도 강한 존재인가 시인, 그는 얼마나 약하고도 또한 강한 존재인가. 섬세한 감수성으로 자연을 노래할 때는 차라리 여린 갈대와 같은 이름일 것이고,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을 때는 칼을 든 전사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의 무기란 그저 도공의 손끝에서 빚어진 청자의 푸른빛과도 같은, 그가 창조해낸 직관의 말과 언어이다. 그것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영원하다. 여기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약소국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비로소 자신들의 ‘민족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시인이 있다.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타라스 셰브첸코(Taras Hryhorovych Shevchenko, 1814~61)이다. 비천한 농노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민족의 불운한 현실을 묵과하지 않았고, 특히 차르 전제정과 농노제에 반대하는 혁명적인 정치사상을 담은 많은 시를 쓴 그는 누구보다도 전사이자 혁명가이기에 충분하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역사를 겪었던 우리에게 이육사와 윤동주 시인이 있었듯이 우크라이나 민족에게는 셰브첸코가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시정을 탁월하게 묘사한 혁명시인 셰브첸코의 삶! 단지 어떤 지역에 인접한 땅, 변경지대라는 뜻의 ‘오크라이나’(Okraina)에서 유래한 별 볼일 없는 나라 우크라이나. 셰브첸코는 폴란드의 지배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스스로 독자적 민족으로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자신의 시를 통해 그 확신을 불어 넣어준 존재, 우크라이나인을 정신적 심리적 의미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우크라인으로 만들어 준 인물이다. 근대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적 정체성, 역사의식은 그에 의해 큰 틀이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유랑시인』은 바로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시정(詩情)을 탁월하게 묘사해 우크라이나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타라스 셰브첸코의 대표 장시(長詩) 21편을 엄선해 묶은 것이다. 대단히 맑고 순수한 개인적 정서를 노래한 서정시나 환상적 담시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현실을 소재로 삼거나 억압적 정치체제와 농노제에 반대하는 혁명적 정치사상을 담고 있는 주요 시들을 싣고 있다. 책의 제목은 1840년 처녀시집인 『콥자르』(Kobzar, 유랑시인)의 이름을 차용했다. ‘콥자르’란 우크라이나의 민속악기인 ‘콥자’(kobza)라는 현악기를 타는 가객을 뜻하는데, 우크라이나의 민속에서는 대개 떠돌아다니며 구전 서사시나 민요를 노래하는 눈먼 늙은 유랑가수로 그려진다. 아울러 이 책은 열정적 혁명문학가로서의 셰브첸코의 삶을 조명한 훌륭한 평전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러시아사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옮긴이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학)에 의해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의 충실한 해제를 싣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시들에 대해 전체 내용과 의미,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을 붙였고 옮긴이주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달았다. 복잡하고 생소한 우크라이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시들이므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주석이 그만큼 중요했다. 또한 화가 셰브첸코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시인의 그림을 함께 실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오역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어, 영어 번역본을 가능한 한 여러 종 참고했다. 국내 출판에 볼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와 셰브첸코라는 생소함을 조금이나마 쉽게 알리고자 한 옮긴이의 이런 노력과 정성이 셰브첸코의 시선집인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편역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